최신 글

여쭤보다 — '물어보다'와는 다른, 존댓말의 온도

여쭤보다 — '물어보다'와는 다른, 존댓말의 온도

한국어를 배우다 보면 반드시 만나는 벽이 있다. 뜻은 똑같은데 상대가 누구냐에 따라 단어를 통째로 바꿔야 하는 순간이다. ‘묻다 (mutda)‘와 ‘여쭤보다 (yeojjweoboda)‘가 딱 그렇다. 친구에게 길을 물을 때는 **물어보다 (mureoboda)**면 충분하지만, 회사 부장님이나 시부모님, 교수님께 무언가를 물을 때 ‘물어봐도 돼요?‘라고 하면 어딘가 삐끗한 느낌이 든다. 바로 이 자리를 정확히 채워 주는 말이 오늘의 표현, **여쭤보다 (yeojjweoboda)**다.

여쭤보다 (yeojjweoboda)

**여쭤보다 (yeojjweoboda)**는 ‘묻다’의 높임말인 **여쭈다 (yeojuda)**에 보조 동사 ‘보다 (boda)‘가 붙은 형태다. 핵심은 ‘방향’에 있다. 높이는 대상은 내가 묻는 상대, 곧 나보다 윗사람이다. 내가 스스로를 낮추는 게 아니라 상대를 올려 세우는 말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제가 부장님께 여쭤봤어요 (jega bujangnimkke yeojjweobwasseoyo)‘는 자연스럽지만, 반대로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물을 때는 여쭤보다를 쓰지 않고 그냥 물어보다를 쓴다.

여기에 붙은 ‘보다’는 ‘한번 해 본다’는 부드러운 뉘앙스를 더한다. 그래서 딱딱한 ‘여쭙다 (yeojupda)‘보다 여쭤보다가 조금 더 말랑하고 조심스럽게 들린다. 상대에게 부담을 덜 주면서 ‘실례가 안 된다면 좀…’ 하고 살며시 다가가는 느낌이다.

국립국어원 사전으로 확인하기

물어보다랑 여쭤보다는 다르지

여쭤보다 「동사」 (높이는 말로) 무엇을 알아내기 위하여 묻다. — 국립국어원 《한국어기초사전》 (krdict.korean.go.kr)

사전은 이 뜻을 네 개 언어로도 풀어 두었다.

ask politely — (polite form) To ask in order to find something out. うかがう【伺う】 — わからないことを聞くことを敬っていう語。 preguntar — (EXPRESIÓN DE RESPETO) Hacer preguntas a alguien para que diga lo que se pretende saber. 请教,询问 — (敬语)为了解某事而问询。 — 국립국어원 《한국어기초사전》 (krdict.korean.go.kr)

사전에 실린 실제 사용 예문도 함께 보자.

  • 기술을 여쭤보다.
  • 방법을 여쭤보다.
  • 의미를 여쭤보다.
  • 가격을 여쭤보다. — 국립국어원 《한국어기초사전》 (krdict.korean.go.kr)
  • 기술을 여쭤보다 (gisureul yeojjweoboda): 오래 일한 선배 장인이나 사수에게 그 일의 비결을 배우고 싶을 때 쓰는 말이다. ‘가르쳐 주세요’보다 한결 겸손하게 다가간다.
  • 방법을 여쭤보다 (bangbeobeul yeojjweoboda): 서류 처리나 요리 순서 같은 ‘어떻게’를 윗사람에게 물을 때. 신입 사원이 가장 자주 쓰게 되는 형태다.
  • 의미를 여쭤보다 (uimireul yeojjweoboda): 어려운 한자어나 옛말의 뜻을 선생님·어른께 물을 때. 한국어 학습자에게 특히 요긴하다.
  • 가격을 여쭤보다 (gagyeogeul yeojjweoboda): 시장이나 오래된 가게에서 연세 있는 사장님께 값을 정중히 물을 때 자연스럽다.

참고로 이 표제어에는 포르투갈어 번역이 사전에 실려 있지 않다는 점을 밝혀 둔다.

실제 대화로 보기

오늘의 표현 여쭤보다

상황: 추석 전날 밤. 내일 준경의 부모님 댁에 간다. 에밀리는 어머니가 만드는 잡채가 늘 궁금했다.

준경: 내일 가면 어머니가 잡채 잔뜩 하실 거야. 너 그거 완전 좋아하잖아. Mom’s going to make a ton of japchae tomorrow. You love that stuff.

에밀리: 응, 나 이번엔 만드는 법 좀 여쭤보려고. 계속 배우고 싶었거든. Yeah, this time I want to ask her how she makes it — I’ve been wanting to learn.

준경: 오, 어머니 엄청 좋아하시겠다. 그냥 편하게 물어봐. Oh, Mom would love that. Just ask her, no pressure.

에밀리: 야, ‘물어보다’랑 ‘여쭤보다’는 다르지. 어머님한테 ‘물어봤어요’ 하면 좀 그렇잖아. Come on, mureoboda and yeojjweoboda aren’t the same. Saying “I asked you” to your mother-in-law sounds off.

준경: 하긴. 너 진짜 한국 사람 다 됐다. True. You’ve basically become Korean.

에밀리: 15년째인데 이 정도는 해야지. 내일 잡채 비법 꼭 여쭤볼 거야. It’s been 15 years, I’d better. Tomorrow I’m definitely asking for the japchae secret.

상황별 활용 예문

여쭈다 더하기 보다

  1. 면접장에서 — 면접이 끝나갈 무렵, 지원자가 면접관에게: ‘면접 마치기 전에 한 가지만 여쭤봐도 될까요? (myeonjeop machigi jeone han gajiman yeojjweobwado doelkkayo?)’ 궁금한 걸 정중히 꺼내면서도 예의를 지키는 전형적인 문장이다.

  2. 병원 진료실에서 — 환자가 의사에게: ‘선생님, 검사 결과에 대해 몇 가지 여쭤보고 싶은데요. (seonsaengnim, geomsa gyeolgwae daehae myeot gaji yeojjweobogo sipeundeyo.)’ 전문가에게 조심스럽게 질문을 여는 자리에 잘 어울린다.

  3. 전화 통화에서 — 어른께 전화를 걸며: ‘혹시 지금 통화 괜찮으세요? 여쭤볼 게 있어서요. (hoksi jigeum tonghwa gwaenchanuseyo? yeojjweobol ge isseoseoyo.)’ 용건을 부드럽게 예고하는 정중한 말투다.

존댓말·반말과 유사 표현 비교

물어보다 여쭤보다 여쭙다

  • 묻다 (mutda): 가장 기본형. 높임의 색이 없다. ‘뭐 하나 물어도 돼?‘처럼 친구 사이에 쓴다.
  • 물어보다 (mureoboda): ‘묻다’에 ‘보다’가 붙어 조금 부드러워진 형. 여전히 존대는 아니다. 동료·친구·아랫사람에게 쓴다.
  • 여쭈다 (yeojuda) / 여쭙다 (yeojupda): 여쭤보다의 뿌리. 조금 더 격식 있고 문어적이다. ‘말씀 좀 여쭙겠습니다.’
  • 여쭤보다 (yeojjweoboda): 여쭈다에 ‘보다’가 붙어 부드러워진 높임말. 일상 대화에서 가장 자연스럽게 쓰이는 정중한 질문 표현이다.

정리하면, 상대가 윗사람이면 여쭤보다, 아니면 물어보다 — 이 한 줄만 기억해도 절반은 성공이다.

문화 배경

높아지는 쪽은 듣는 사람

한국어의 높임법은 단순한 예절을 넘어 관계의 지도를 그린다. 사극에서 아랫사람이 왕이나 대감 앞에서 ‘여쭙겠습니다’라며 몸을 낮추는 장면을 떠올려 보라. 직접 대사를 옮기지 않아도, 그 한마디에 담긴 위아래의 거리감은 지금의 회사·가족 관계에도 그대로 이어진다. 요즘 드라마에서도 신입 사원이 상사에게, 사위가 장인·장모에게 ‘여쭤봐도 될까요?‘라고 조심스럽게 운을 떼는 장면은 흔하다. 이 말을 제때 꺼낼 줄 안다는 건, 한국 사회의 눈치와 거리 감각을 읽어 냈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마무리 퀴즈

다음 중 가장 자연스러운 문장은?

  1. 부장님이 저에게 자료를 여쭤보셨어요.
  2. 제가 교수님께 성적을 여쭤봤어요.
  3. 동생한테 답을 여쭤봤어.

.

정답: 2번. 여쭤보다는 ‘내가 윗사람에게’ 물을 때만 쓴다. 1번은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물은 상황이라 ‘물어보셨어요’가, 3번은 동생이 상대라 ‘물어봤어’가 맞다.


이 글의 단어 뜻풀이와 예문은 국립국어원 《한국어기초사전》(krdict.korean.go.kr)에서 가져왔으며, 해당 부분(번역 포함)은 CC BY-SA 2.0 KR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배포됩니다.